[난청 일기_20231002] 갑자기 찾아온 난청

2023. 10. 22. 22:07일상_Life/난청일기

 

10월 2일, 갑자기 소리가 안 들렸다.

그날은 추석과 개천절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임시공휴일이었다.

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떴을 때, 오른쪽 귀가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.
삐~하는 소리와 함께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.

 '이게 그 말로만 듣던 이명인가' 

이명이라니 입사 5년차 즈음 모시던 팀장님의 기억이 떠올랐다. 그 팀장님은 회사에서 경주마처럼 온 힘을 다해 달리는 분이셨다. 회사에 있는 모든 시간동안 논쟁하고 설득하며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뇌와 입을 쉬지 않으시는 보기 드문 분이셨다. 그분이 40대 중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이명이 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. 나 역시 최근 몇 달 간  내 능력을 넘어서는 업무와 회의, 전화, 발표에 시달리던 참이었다.

'올 게 온건가...'

대수로웠지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아내를 깨웠다. 쉬는 날이면 근처 호수공원 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. 아내도 평소에 품고 있었던 말들을 산책하는 동안 나에게 전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.

요즘 따라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마시며 호수 주변을 걷는 동안 아내가 오른쪽에서 말하는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. 난 아내와 자리를 바꾸며 오른쪽 귀에 대해 이야기했다.

"여보, 나 오른쪽 귀가 꽉 막힌 것 같은데?" 

아내는 어제 알레르기 때문에 재채기를 해대던 나를 기억하며 비염 때문일 거라 나를 안심시켰다. 우리에게는 내 귀 이야기보다 좀 더 중요한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.

우리 가족은 3일 후면 기다리던 5박 6일의 일본여행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. 지난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께서 첫째 딸 채우에게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주셨다. 4학년 채우는 유난히 일본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. 아마도 같은 반 친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인 귀멸의 칼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후부터였던 것 같다. 산타할아버지께서 착한 일을 했다며 보내주신 소중한 여행을 미루고 미루다 10개월이 지나서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.

"우리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맥주도 실컷 마시자."

아내나 나나 여행을 힘들게 다니는 것보단 여유 있게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이번 여행에도 꼼꼼한 계획은 없었다. 하지만 음식에는 꽤 까다로운 입을 가지고 있었다. 아무리 방사능오염수를 배출하는 나라에 간다 해도 맛있는 생맥주를 현지에서 먹는 것보다 좋은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.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시원한 생맥주 한 모금이 간절하다.

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도 오른쪽 귀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. 임시공휴일이지만 일본여행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미리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로 출근했다. 300명 정도가 근무하는 건물이었지만 임시공휴일에는 역시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.

'우리회사 참 좋아.'

내가 일이 많은 것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즐거움을 위해 잠시 희생하는 것이라는 스스로를 설득했다. 컴퓨터를 켜고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골라 먼저 지워나갔다.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점심 먹을 겸 이비인후과에 들려 귀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. 임시공휴일이라서 닫힌 병원들도 많았기에 네이버의 도움을 받아 나와 같은 처지인 의사 선생님을 만나볼 수 있었다. 간단한 청력검사가 끝나고 선생님은

"돌발성난청입니다. 급하게 치료해야 하니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. 공휴일이라서 대학병원도 응급실밖에 갈 수 없을 것 같은데..."

'입원? 응급실?'

사실 40살이 되도록 큰 병 없이 살아온 나에게 입원이나 응급실이란 단어는 남 이야기처럼 느껴졌다. 부모님이나 먼 친척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. 심각한 목소리로 어색한 단어를 던지고 계시는 의사선생님에게 뭘 질문해야 하지 조차 떠오르지 않았다. 회사로 돌아왔지만  쿵쾅거리는 심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. 

'일본 여행은 어떡하지? 아내와 아이들한테는 어떻게 말하지?'

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이었다. 난 빠르게 돌발성난청에 대해 검색했다. 응급질환에 속하는 질환으로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었다. 사무실 의자에 앉아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더이상 집중을 할 수 없었다.

집으로 돌아와 저녁이 다 되어 만난 아내에게 잠깐 앉아 보라며 말을 꺼냈다.

"여보, 나 이비인후과에서 돌발성난청이라고 응급질환이라서 입원해야 한다는데 어떡하지?"

아내의 표정이 굳어졌다. 아내는 당장 입원해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을 찾아보자며 이 병원 저 병원 전화를 돌렸다. 집 근처에 있는 세종충남대병원부터 을지대병원, 선병원, NK병원 등 갈 수 있는 병원에 모두 전화를 해 봤지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지금 가도 내 귀를 봐줄 수 있는 의사는 없다는 것이었다.

이때까지는 나에게 불현듯 찾아온 이 병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 알 수 없었다.